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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리] 울릉도와 영동 지방의 다설(多雪) 현상

by 여정을 기리다 2026. 9. 9.

겨울철 일기예보를 보다 보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맑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데, 강원도 영동 지방이나 동해 한가운데 울릉도에는 하루 만에 수십 센티미터가 넘는 대설특보가 내려지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한반도의 겨울은 본래 시베리아 고기압의 지배를 받아 차갑고 메마른 한랭 건조한 기후가 기본 특징이지만, 이 두 지역만큼은 매년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지는 대표적인 다설지(多雪地))로 꼽힙니다. 

도대체 왜 울릉도와 동해안 영동 지방은 전국이 가뭄과 건조함에 시달릴 때 유독 하얀 눈폭탄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면에는 차가운 대륙 기단과 따뜻한 동해 바다 사이의 열교환, 그리고 백두대간이라는 거대한 지형적 장벽이 맞물린 정교한 기후학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지역에 눈이 집중되는 과학적 원리와 이에 적응하며 형성된 독특한 주거·생활 문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폭설의 첫 번째 엔진 : 해기차(海氣差)와 눈구름의 형성

울릉도와 영동 지방 대설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바다와 공기의 온도 차이를 뜻하는 '해기차(海氣差)'입니다. 

  • 동해의 상대적 고온성 : 겨울철 동해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동한난류의 영향과 깊은 수십 덕분에 한겨울에도 해수면 온도가 약 8~12℃ 안팎을 유지합니다.
  • 차가운 대륙 기단의 유입 : 반면 북쪽에서 남하하는 차가운 공기 덩어리는 영하 10℃에서 수십 도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차갑습니다. 
  • 불안정성과 적운열 발달 : 해수면과 상공 대기의 온도 차이가 15℃ 이상 벌어지면, 따뜻한 수면에서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증발함과 동시에 찬 공기 하층으로 열이 전달됩니다. 이로 인해 대기가 급격히 불안정해지며 바다 위로 수직으로 두껍게 발달하는 대류성 눈구름대가 대규모로 형성됩니다. 

2. 울릉도 : 바다 한가운데서 눈구름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화산섬

울릉도는 한반도에서 연간 적설량이 가장 많은 최다설 지역으로, 겨울철 강수량이 1년 전체 강수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동해상을 가로지르며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눈구름대는 사방이 트인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장애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해발 984m의 성인봉을 중심으로 솟아 있는 울릉도의 화산체 지형입니다. 바다 위를 낮게 깔려 이동하던 눈구름이 이 높은 산체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강제로 위로 밀려 올라가는 지형성 상승을 겪게 되고, 구름 내부의 수증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좁은 섬 전역에 기록적인 폭설을 쏟아붓게 됩니다.

 

3. 영동 지방 : 백두대간과 북동기류가 빚어낸 합작품

강릉, 속초, 고성, 동해 등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한 영동 지방의 폭설은 바람의 방향이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인 겨울철 북서풍이 아닌, 동해를 거쳐 불어오는 북동풍(북동기류)이 자리 잡을 때 대설이 발생합니다. 

구분 일반적인 겨울 바람 (북서 기류) 영동 폭설 시 바람 (북동기류)
기압 배치 전형적인 서고동저형 기압 배치 동해 북부 고기압 + 남쪽 저기압 통과
수증기 유입 차가운 대륙을 거쳐 건조한 상태로 유입 따뜻한 동해상을 길게 통과하며 막대한 수증기 흡수
지형 충돌 태백산맥 서사면을 넘으며 영동으로 하강 태백산맥 동쪽 급경사면에 정면 충돌
영동의 날씨  푄 현상으로 기온 상승 및 건조(양간지풍) 구름의 단열팽창으로 해안가·산간에 폭설 집중

 

동해의 습기를 듬뿍 머금은 북동기류가 해안선에 도달한 직수, 해발 1,000m가 넘는 거대한 백두대간(태백산맥)의 동쪽 급사면을 타고 급격히 수직 상승합니다. 공기가 상승하면서 단열팽창으로 기온이 급강하하고, 머금고 있던 수증기가 단시간에 얼어붙어 영동 해안가와 산간 도로를 하얗게 뒤덮는 폭설이 완성됩니다. 

4. 눈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 다설 지형이 빚어낸 생활 문화

자연이 내린 거대한 적설량은 두 지역 주민들의 전통 가옥과 생활양식에도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 울릉도와 우데기와 설피

  • 우데기 : 가옥 본채 외벽 바깥쪽으로 처마 끝에서 마당까지 억새나 옥수수대를 엮어 둘러친 이중 외벽입니다. 눈이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지붕 높이까지 쌓여도 우데기와 본채 사이의 공간(배설 공간)을 통해 눈을 맞지 않고 방, 부엌, 외양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 설피 : 눈이 깊게 쌓인 야외를 걸을 때 발이 푹푹 빠지지 않도록 넓적하게 엮어 신발 바닥에 덧대어 신던 전통 보행 도구입니다. 

2) 영동 산간 가옥의 급경사 지붕

  • 영동 산간 지역의 가옥들은 지붕이 물매(경사도)를 매우 가파르게 만들어 폭설의 막대한 하중으로 인해 집이 붕괴되는 사고를 자연스럽게 예방했습니다. 
  • 교통이 단절되는 고립 상황에 대비해 초겨울이 오기 전 마른 장작과 건어물, 곡식을 넉넉히 비축하는 저장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5. 대기와 지형이 정교하게 맞물린 자연의 법칙

울릉도와 강원도 영동 지방의 폭설은 단순히 '우연히 많이 내린 눈'이 아닙니다. 겨울철에도 식지 않는 동해의 열기, 북쪽 대륙의 혹한이 만든 해기차, 수증기를 가득 실어 나르는 바람의 방향, 그리고 백두대간과 성인봉이라는 입체적 산악 장벽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작동한 지구물리학적 결과물입니다. 지리적 요인은 인간의 거주 환경을 제한하는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지역만의 독창적인 가옥 양식과 생활의 지혜를 꽃피우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6. 마무리

겨울철 뉴스 특보에서 영동 고속도로의 정체나 울릉도의 고립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단순히 재해로만 바라보기보다는 차가운 대기와 따뜻한 바다, 그리고 험준한 산맥이 만들어낸 장엄한 자연의 상호작용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땅의 생김새와 바람의 길목을 이해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지리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